우리가 같은 선 위에 설 수 있기까지 <아인슈타인의 시계, 푸앵카레의 지도> by InDee



 
배터리가 떨어지면 곧잘 느려지거나 멈춰서 주기적으로 관리를 해줘야 함에도 불구하고 여느 종교들과는 비교가 안되는 강력한 신앙의 대상이 있다. 그것은 바로 시간이다. 인터넷이 발달하면서 모바일 기기나 컴퓨터 등에서는 따로 관리해 줄 필요가 없어지기는 했지만, 여전히 '시간을 맞추는' 일은 일상적인 행위로 여겨진다. 


사실 여기에는 어폐가 있다. 관리해 줘야 할 대상은 시계이고, 시간 자체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것 역시 조금만 더 생각해 보면 둘을 구분하는 것이 크게 의미 없는 일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우리가 믿고 있는 24시간이라는 체계는 결국 시계와 같은 장치 없이는 측정이 불가능한 대상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모든 1초는 동일하게 흐른다고 믿어 의심치 않는 시간이라는 녀석은 결국 정확히 맞춰진 시계라는 전제조건 위에 성립한다. 


'시계를 정확히 맞추는 일'이 지금에야 너무 쉽게 생각하지만, 처음으로 시간을 동기화 시키려는 아이디어가 시도되던 시기에는 인류 역사에 손꼽히는 난제였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길게 말할 것도 없다. 역사적인 천재 '아인슈타인'이 고민하던 문제였으니까.
<아인슈타인의 시계, 푸앵카레의 지도>는 시간이라는 개념이 근대적으로 정리되던 시기의, 푸앵카레와 아인슈타인 사이의 시점을 중심으로 당시의 상황과 이론적인 배경을 자세하게 소개하고 있는 책이다. 이 책을 읽다 보면 지금 우리가 느끼고 있는 시간이 무척 낯설게 보이기 시작한다. 마치 시간은 공기처럼 자연 상태 그대로 항상 존재했었고, 사람은 시계 만을 발명했다고 생각하지만, 이 책에서는 그 시간을 동기화하기 위해 사람의 손으로 끊임없이 조정하는 과정들이 그려진다. 


전 우주에서 시간은 모두 동일하게 흐를 거라고 생각하는 것이 직관적이지만 이미 우리는 시간은 저마다 다르게 흐르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시간의 차이, 즉 시차는 너무나 당연하게 알고 있기도 하고, 현실에서는 경험할 수 없겠지만 영화나 다양한 SF 이야기를 통해 시간이 빠르고 느리게 흐른다는 것 역시 자주 접해왔던 사실이다. 전 세계의 물리학자들이 합심해서 사기를 치는 것이 아닌 이상, 시간의 속도조차 변화한다는 것은 단순 상상이 아닌 실제로 가능한 일이라고 알려져 있다. 


테드 창이 쓴 소설 '당신 인생의 이야기'를 원작으로 드니 빌뇌브 감독이 연출한 영화 '컨택트'에서도 잘 표현되어 있듯이, 나는 종종 내가 게으르고 시간을 낭비하고 있다고 느끼는 이유가 시간이 '흐른다', 시간을 '쓴다'와 같은 언어적인 표현 방식의 한계에 갇혀 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했었다. (시간하고 상관없이 게으른 건 그냥 게으른 거다.)
데카르트가 200% 고민해서 절대 반박이 불가능할 거라 생각하며 내놓은 명제,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역시 '나는'이라는 be 동사의 언어적인 한계로 인해 반박되었듯이, 불완전한 사람의 발명품인 언어라는 도구로 다뤄지는 개념들은 필연적으로 불완전성을 가질 수밖에 없다. 
 모든 약속들이 그렇듯 시간이 사람 사이에 만들어진 어떤 규칙이라면 어떤 전제 조건이 깔려 있어야만 성립이 가능하다. 그것은 반드시 불완전한 사람이 발명한 것이 아닌, '발견'한 완전한 것이어야만 한다. 세상에 그런 게 어디 있을까 싶지만, '숫자'만큼은 발명이 아닌 발견이라고 해도 좋을 개념이다. 물리학의 근간이 숫자에 있는 것도 숫자가 갖는 완전함 때문이다. 그리고 시간 역시 숫자로 표현되는, 수식 안에서 존재할 수 있는 것이기에 철학을 넘어 물리학자들에게도 가장 중요한 연구 대상이 될 수 있었다. 


아인슈타인은 원래부터 학계에 속한 물리학자가 아니었다고 한다. 그런데 어떻게 그런 아이디어들을 생각해낼 수 있었을까? 기차가 등장하면서 전 세계가 '빠른 속도'로 아주 가깝게 묶이기 시작한 시점에 아인슈타인은 철도청에 근무하고 있었다. 지구가 커질 리는 없으니 거리는 일정한 상태에서 속도가 빨라진다면, 속도에 반비례하는 시간은 그만큼 작은 단위로 쪼개지기 시작한다. 따라서 그 이전 시대보다 시간은 더더욱 정확성을 요구되게 되었고 우연히도 딱 그 시점에 아인슈타인이라는 천재가 그곳에 적절하게 존재했고 결국 물리학의 판을 바꾸게 된다.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이 어떻게 등장했고 그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설명하는 책은 너무나도 많다. <아인슈타인의 시계, 푸앵카레의 지도>는 그의 이론에 집중하기보다 그가 살던 역사적인 시간대, 배경, 상황을 서술하는 데에 공을 들인 책이다. 시간뿐만 아니라 지금까지 사용하는 미터, 킬로그램과 같은 다양한 단위들이 만들어지고 약속하는 역사적인 순간들도 함께 볼 수 있어서 흑백텔레비전 속 다큐를 보는듯한 감동도 있었다. 세계 공통의 표준시를 정하고, 또 그것들을 동기화하기 위한 각계각층의 노력들은 그야말로 치열했다. 푸앵카레라는 처음 들어보는 생소한 사람이었는데, 아인슈타인보다 시간적으로 살짝 앞서서 교차하던 사람으로, 아인슈타인이 어떤 시대에서 어떤 바통을 넘겨받았는지 볼 수 있는 지점들이 많이 있었다. 영화로 치면 유명한 히어로의 탄생 설화를 담고 있는 프리퀄을 보는듯한 느낌이랄까. 


치열한 사람들의 삶을 보는 것은 늘 좋은 자극이 된다. 특히 그들이 애썼던 것들이 지금은 너무 당연하고 손쉽게 생각하는 어떤 것을 위한 것이었다면 더욱 그렇다. 시간은 그냥 흐르기만 한 것이 아니라 항상 패러다임의 전복이 그 흐름에 함께했다. 서술 방식도 친절하다고는 할 수 없고, 분량마저 만만치 않아서 쉽게 읽기는 어려운 책이었지만 좋은 다큐멘터리를 보고 난 후의 감동과 비슷한 것을 느낄 수 있었던 책이었다.

덧글

댓글 입력 영역


통계 위젯 (화이트)

222
169
141764

ad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