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쾌와 불쾌 그 사이 어딘가 <믿습니까? 믿습니다! _ 오후> by InDee

'오래전에 살던 사람들은 실제로 하늘에서 용을 봤습니다.'

학부시절 수강했던 수업의 첫 시간의 시작에 교수님께 들었던 말이다. 있을 리 없는 용을 실제로 봤었다고 하니 모든 학생들이 황당해 했지만, 그분이 하고자 했던 말은 어떤 현상을 해석하는데 있어 시대적 한계와 속한 맥락을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지금의 관점에서 본다면 그들의 믿음이 현실에 기반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들의 믿음을 부정하거나 잘못되었다고 말할 수는 없다는 것을 이해하게 되었고, 반대로 지금 우리가 당연하다 생각하는 것들 역시 또 다른 용 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항상 갖게 해줬던 귀한 경험이었다.

'시간은 산에서 더 빨리, 평지에서는 더 느리게 흐른다.'

카를로 로밸리의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의 도입부에 나오는 말이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경험하는 상식과 무척 어긋나 있는 얘기라서 앞의 용의 목격담처럼 터무니없다고 치부해버릴 수 있겠지만, 놀랍게도 현대 물리학의 세계에서는 실제로 이것이 관찰 가능한 사실이라고 한다. 우리의 세계가 사실은 매트릭스의 세계와 같이 어떤 가상의, 프로그래밍 된 공간이 아닌가라는 물음은 철학자들이 아닌 현대의 과학자들에게 현재진행형 질문이다.

위의 두 가지 이야기에서 공통적으로 알 수 있는 것은 사람이 갖고 있는 인식의 한계가 명확하며, 그 한계는 계속해서 변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동시에 그 변화와 한계 속에서 생겨나는 믿음을 동시대가 아닌 다른 어느 특정 시점에서 잘못되었다고 말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지금 내가 정확하다 믿고 있는 관측 도구들이 전혀 정확하지 않을 가능성이 매우 높기 때문이다.
(심지어 모든 것이 확률로 존재한다는 양자의 세계에서는 더욱 그렇다.)

서론이 길었다. 과학 분야를 전문으로 다루는 동아시아 출판사에서 본격 미신 이야기, <믿습니까? 믿습니다!>를 출간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매우 흥미롭다고 생각했고 어떤 새로운 시각을 제시해 주리라는 기대 역시 컸다. 하지만 내 기대와는 무관하게 이 책은 무척이나 실망스러웠다.


미신계의(?) 총, 균, 쇠 가 되고싶었던 책

개인적인 감상이나 하고 싶은 이야기는 일단 접어두고. 먼저 어떤 책인지, 어떤 장점을 갖고 있는지를 간단히 이야기해보면.
 정의하기 나름인 광범위한 미신만큼이나 다양한 역사와 분야를 아우르며 다양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그것이 옳고 그름을 떠나서 여러 분야를 프레임화 시켜서 독자가 쉽게 읽을 수 있도록 제시하고 있다는 점은 장점이다. 다양한 분야를 특정 프레임으로 새롭게 바라보고 해석하는 점은, 책 내용 중에 저자가 언급하기도 했던 재레드 다이아몬드의 <총, 균, 쇠>가 연상되는 구성 방식이기도 하다.
 재미있는 점은 이 책에서 다뤄지고 있는 미신들은 대체로 부정적인 의미로 쓰이고 있는데, 정작 작가 본인이 명리학을 공부했던 사람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책 내용 중에도 꽤 자주 작가 본인의 이야기들이 등장한다.

저자는 과거의 농경부터 시작해서, 종교, 사상, 오늘날의 실리콘밸리까지 다양한 분야에 걸쳐 존재하는 다양한 믿음들에 대해 회의주의자의 관점으로 이야기하고 있지만, 특히 종교에 대한 반감은 숨기지 않고 드러내는 편이라 종교인과 비 종교인의 호불호가 많이 갈리는 지점이 될 것 같다.

그 밖에 책의 문장이나 내용이 대체로 가벼워서 쉽게 읽히는 편이다. 그래서 대중적으로 꽤나 인기를 구가하고 있는 작가이기도 하다. 스스로 굉장히 유쾌하고 재미있게 이야기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기도 하고, 실제로 그의 글을 무척이나 재미있고 통쾌해 하는 독자들이 많은 것 같다. 평소 그의 팬이었다면 보장된 재미를 누릴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이렇게 사람 마음을 잘 알다니?

책에 대한 간단한 소개는 이 정도로 하고 개인적인 소감을 이야기하자면. 일단 이 책은 정말 신통한 책이다. 내가 책을 읽으며 하고 싶었던 말들이 전부 책에 쓰여 있었기 때문이다. 사람 마음을 읽는 다니 보통 능력이 아닐 수 없다. 내가 가장 공감했던, 책의 앞뒤에 쓰여있던 이야기들은 다음과 같다.
 
"그냥 아는 걸 다 끼워 넣는데 맥락을 맞춰야 하니 글이 그렇게 써진 것뿐이다. 만약 독자가 내 책을 읽었는데도 모르겠다면, 작가인 나도 모르는 것이다. (...)
아무튼 그런 이유로 다음 책은 과학과는 정반대 분야를 써야겠다고 결심했고, 이 책은 그 결과물이었다."
 
"하지만 초심자들은 어차피 그들의 말을 알아듣지 못하고, '전문가조차 내 의견에 제대로 반박하지 못했다'라고 생각하면서 자신의 편협한 믿음을 강화한다. 사실 내가 온갖 분야의 책을 쓸 수 있는 것도 다 더닝 크루거 효과 때문…"
 
"선생님이 내게 다른 사람의 사주를 봐주지 말라고 한 건, 내 사주에 내가 말을 함부로 한다고 나와 있기 때문이다. 내 글을 읽어본 사람이라면 공감하겠지만, 나는 기본적으로 판단을 빨리 내리고 말을 함부로 하는 경향이 있다. 그건 사주에 적혀 있든 아니든 간에 맞는 말이다. (...)
공짜로 (사주를) 봐주는 건 뭐가 다르나 싶겠지만, 사람들은 돈을 내지 않는 것에는 크게 신경 쓰지 않으므로 함부로 말해도 괜찮다."

스스로 아는 사람이라 생각하고, 본인도 모르는 이야기를 맥락만 맞춰 이야기를 하고, 또 그 이야기에 대해 빠르게 가치판단을 하고 말을 함부로 한다는 것. 이 책을 읽으며 정말 그렇게 생각을 했는데 본인이 모두 적어놓은 것을 보면 거의 셀프 디스 수준이다.

하지만 위에 언급된 문장 중 마지막 문장, '돈을 내지 않는 것에는 함부로 말해도 괜찮다'라는 생각만큼은 절대 동의하기가 어렵다. 함부로 말해도 괜찮은 것이 있다는 말을 함부로 하다니..



비판과 비난, 그리고 이중잣대


개인적으로 이 책에서 크게 두 가지 부분이 매우 실망스러웠다.

첫째로, 어떤 사건들을 여럿 소환하고 묶어서 설명한 후에 저자의 가치판단이 들어가는데, 그것들이 묶이고 판단을 하는 기준들이 무척 작위적이거나 읽는 사람을 설득할 만한 근거가 부족하다.
 사석에서 나누는 개인의 의견 정도야 얼마든지 가볍게 이야기할 수 있겠지만, 정식으로 출간되는 책이라는 형태로 어떤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는 주장과 근거들이 보다 구체성을 띠어야 한다. <총, 균, 쇠>가 훌륭한 저서인 이유도 저자의 생각을 뒷받침해 주는 광범위하고 구체적인 자료들을 독자들이 납득할 수 있을 정도로 잘 배치해 두었기 때문이다. 흔히 말하는 비판과 비난의 차이 역시 여기에서 비롯되는데, 개인적으로 느끼기에 저자가 '함부로 빠르게 내린 판단'들은 비판이라기보다 비난에 가깝다고 느껴졌다. 얼마전에 읽었던 <가짜뉴스의 고고학>이 그랬듯이 굳이 어떤 가치판단을 하지않더라도 나열된 사실들만으로도 충분히 여러가지 생각을 해볼 수 있다.


둘째로, 모두 까기 수준으로 다양한 믿음에 대해 부정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음에도, 저자 본인이 옳다고 믿고 추구하는 가치에 대해서는 매우 느슨한 이중 잣대를 적용하고 있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었다.
 
"소수 집단은 이런 식으로 스스로 정체화 해야 한다. 소수자 인권 운동이나 페미니즘 같은 정체성 운동도 마찬가지다. 종종 아는체하는 이들은 정체성 정치의 편협함을 지적한다. 실제로 정체성 정치는 편협하며 유치한 면이 있다. 하지만 그런 사고가 필요한 시기가 있는 법이다."

자신의 기준에 부합하지 않는 것들에 대해서는 비난하면서도, 자신이 추구하는 가치에 대한 비판에는 그런 사고가 필요한 시기가 있다고 하며 그냥 퉁 치고 넘어간다. 이런 식의 논리라면 그가 비판적인 입장을 견지했던 모든 믿음들에게도 똑같이 그런 믿음이 필요한 시기가 있는 법이 아닐까.



통쾌와 불쾌 그 사이 어딘가


"여러분이 믿거나 말거나 나는 누구의 기분도 망치고 싶진 않다. 그것이 설혹 나와 다른 사람일지라도 말이다."
 
나는 종교인이 아니고 심지어 평소에 종교에 대한 비판을 주저하지 않는 사람임에도, 작가의 종교에 대한 묘사는 무척이나 불편했다. 누구의 기분도 망치고 싶지 않다고 했던 말과는 다르게, 본인이 말을 함부로 하는 사주를 타고났다는 이야기를 곁들이며, 그리 사려 깊은 언어를 구사하지 않는다. 그리고 애초에 글은 말이 아니다. 충분히 다시 생각하고 고쳐 쓴 결과물이라는 점을 생각해 보면 악의적이라고 느껴질 정도다. 이런 느낌을 한 번 받고 나니 더 이상 책의 가벼운 문장들이 전혀 유쾌하지도 통쾌하지도 않았다.
 
어조와는 별개로 그 옛날 사람들이 봤던 용은 그들이 봤던 것이 용이 아닐지언정 그들의 믿음이 미개하다고 말하는 것은, 내게는 정말 조심스러운 일인데, 본인의 믿음대로 그야말로 통쾌하게 하고 싶은 이야기는 다 해버리는 작가가 어떤 의미에서는 존경스럽기도 했다.


다양한 책들을 리뷰하면서 전례 없이 날을 세워 비판하긴 했지만, 그만큼 개인적으로는 생각할 거리들을 많이 던져준 책이었다. 그리고 또한 책의 주제인 믿음에 대해서도 유의미한 문장들이 많이 있었다고 생각한다. 걔 중에 무척 공감했던 부분을 적어두고 글을 마친다.

"체계가 완성된 미신은 사라지지 않는다. 미신이나 종교뿐 아니라 사상 역시 마찬가지다. 사람들은 자신이 가진 사상에 따라 모든 사회 현상을 해석한다.
(...)
미신이 무서운 것은 불완전하기 때문이 아니다. 완벽하기 때문이다. 미신과 종교에 빠지는 사람들이 모두 바보는 아니다. 그들 중 일부는 우리보다 훨씬 똑똑하다. 그들은 단지 '미신이 쌓아 올린 체계를 받아들였을 뿐이다."


그나저나 다른 평가들에는 칭찬 일색이라 내가어딘가 잘못된게 아닌가 반성좀 해봐야겠다.




-(놀랍게도)출판사로부터 본 도서를 제공 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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