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0에서 시작한다.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 0 _ 채사장> by InDee


숫자는 1부터 시작한다고 하면 동의하지 않을 사람은 거의 없겠지만 0부터 시작한다는 말에는 동의하지 않을 사람도 있을 것이다. 순서대로 늘어놓을 수는 있지만 1과 0은 있음과 없음의 영역으로 구분이 되기 때문이다. 많이 하는 우스갯소리 중에 못하는 거 빼고 다 할 수 있다는 말에서의 모순처럼, 사람은 없는 것도 있게 만드는 신기한 능력을 갖고 있어서 짧은 역사 속에서 수많은 개념과 농담을 개발했다.
 
지대넓얕 1권 2권 그리고 모든 지식의 시작이라 당차게 말하는 0권(제로)이 출간되었다. 세상을 1부터 시작하는 사람과 0부터 시작하는 사람이 있다면 채사장은 명백히 후자의 사람이다. 1,2편에서 각각 사회 이슈를 다뤘다면, <지대넓얕 제로>에서는 인류의 사상적 기반이 되는 더 근본적이고 방대한 영역의 주제를 다룬다. 


세계와 나

지대넓얕은 1-2-0으로 이어지는 시리즈이지만 각 책들은 독립적으로 완성이 되기도, 그렇지 않기도 하다. 각각의 책들은 서로 다른 특정 주제를 다루고 있어서 어떤 책을 먼저 골라서 읽어도 무방하지만, 저자가 왜 이런 주제들을 하나씩 설명하고 있는지 좀 더 거시적인 관점에서 보기 위해서는 지대넓얕 시리즈뿐만 아니라 그의 다른 저서 '열한 계단', '우리는 언젠가 만난다' 등을 함께 읽어볼 필요가 있다. 
 
채사장이라는 2교시짜리 수업이 있다면 1교시는 세계의 이해, 2교시는 자신의 이해가 될 것이다. 1교시에 해당하는 책들이 '지대넓얕 1,2편'과 '시민의 교양'이고, 2교시에 해당하는 책들이 '열한 계단', '우리는 언젠가 만난다' 이며, <지대넓얕 제로>는 1교시와 2교시 사이의 1.5교시쯤에 위치한다. 

여러 권의 책을 통해 다양한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세계와 나'라는 일관된 주제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끈질기게 탐구한 만큼 그 결론 역시 또렷한데, 세계와 나는 동일하다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이번 <지대넓얕 제로>는 전혀 직관적으로 납득이 되지 않는 위의 결론이 어디에서 기인했는지, 그 출처에 대한 소개라고도 줄일 수 있겠다. 
역사적으로 큰 영향을 미쳤던 동서양의 다양한 종교와 사상, 때로는 과학을 넘나들며 설명하고 그것들을 엮어내는 과정은 단순 역사 책으로 봐도 충분히 재미있는 내용들이 많다. 


 

책은 도끼다

기존의 팬들에게는 이번 <지대넓얕 제로>가 어느 정도 예정된, 익숙한 수순의 이야기이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많이 낯선 이야기인 것이 사실이다. 그가 어떤 이야기를 하려는지 알면서도 모든 지식의 완성이라는 자극적인 문구나, 인트로에 보이는 확신에 가득 찬 그의 어투가 종교를 하나 세워도 되겠다는 인상이 들 정도이니 말이다.

하지만 그의 언어가 낯선 이유는 그것이 전혀 새로운 이야기라서가 아니라 대부분의 사람들은 1과 0, 있음과 없음으로 구분하는 이원론적인 '세계관'에 너무나 익숙하거니와 그 외의 것들에는 관심조차 없었기 때문이다. 사람들을 이 주제까지 끌고 오기 위해 지금까지 200만 부가 넘는 책을 팔면서 여기까지 왔으니 결코 쉬운 길은 아니었다. 두툼한 책을 처음 받아 들었을 때부터 그 끈기와 큰 그림에 박수라도 보내고 싶은 심정이었다. 
박웅현의 베스트셀러의 제목이기도 한 책은 도끼다라는 말이 있다. 한 사람의 세계관이 깨지기 위해서는 보통의 힘으로는 불가능하다. 오랜 시간 공을 들여 조금씩 깨는 도끼와 같은 시리즈이다. 



0 : 결론이 아닌 시작

아주 어릴 때부터 내가 사실 색맹이라서 내가 알고 있는 빨간색이 남들이 알고 있는 빨간색과 다른 것이면 어쩌나 하는 불안감을 안고 살았기 때문인지, 개인적으로는 각자의 프레임을 점검하게 해주는 이런 책들이 무척 반갑고 귀하게 느껴진다. 
 
특히나 지금 시대에 많이 잊히고 낯설어진, 대부분의 사람들은 평생 들어보지도 못하고 지나갈 수 있는 이야기들을 이런 대중서로 만날 수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 값진 책이다. 단순히 고대의 이야기 뿐만 아니라 현대 과학에서 밝혀지고 있는 세상의 객관성에 대한 합리적인 의심들이 오히려 이 책의 주제의 배경이 될 수 있다는 것이 무척 흥미롭다.
살면서 한 번쯤 자신의 세계관을 뒤흔들어야 할 필요성을 느낀다면 반드시 읽어 봐야 할 책이다. 다만, 이 책은 제로라는 제목처럼 결론이 아니라 시작이다. 이 낯섦을 극복하고 넘어서면 무엇이 있는지, 끝이 보이지 않는 지평을 마주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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