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쓸모 있음 <관계의 과학 _ 김범준> by InDee


즐기는 사람 못 당한다는 말은 거짓이다. 살면서 처음으로 재미있어도 재능 없으면 할 수 없는 일이 있다는 걸 깨닫게 해줬던 것이 고교시절의 물리였다. 분명 수업을 듣고 문제를 푸는 것은 무척 재미있어했는데 막상 채점을 해보면 결과는 늘 처참했다.  
상처와 추억(?)을 안겨줬던 물리와 담쌓은지 십수 년 동안 거의 접할 일이 없었던 물리학을 다루는 책 중 가장 최근에 읽게 된 것이 <관계의 과학>이었다.  


본격적으로 책을 다루기 전에 하나의 오해가 있었음을 먼저 말해야겠다. 물리에 대한 내 상식이 짧은 탓에 <관계의 과학>에서 다루게 될 내용이 '누가 누구보다 먼저 뛰어갔다더라'라는 류의 교과서에 나오던 내용일 거라 짐작했었다.  
'관계의 과학'이 내가 알던 물리학의 단순히 비유적인 제목이라 생각했던 오해가, 비유가 아닌 통계 물리학의 더 세련된 표현이라는 것을 이해하는 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물리학자도 세상을 본다. 다른 사람들과는 좀 다르게 말이다."
P325




쫄지마세요.  

책을 펴기도 전부터 물리학이라는 말에 한 번 쫄고 들어갔던 나 같은 사람이 사실 통계 물리학이었다는 것을 알았다고 해서 애초에 그 차이를 알지 못하기에 두려움이 사라질 리 없다. 각 잡고 읽기 시작한 이 책은 생각보다, 아니 생각조차 하지 못했던 내용들로 가득해서 얼떨떨했다. 길게 설명할 필요 없이 아래의 그림을 보면 바로 와닿을 거라 생각한다. 

된장찌개보다 짜장면이 더 나은 경우 



영화 흥행 곡선과 메르스 환자 곡선 



국회의원 연결망 


산불을 막는 법부터 시작해서 물리학에서 다루는 가장 흥미로운 주제인 시간까지 다양한 주제들로 가득하다. 익숙한 주제들을 생소한 시각으로 들여다보는 경험은 피하기보다는 더 자세히 들여다보고 싶은 즐거운 경험이다. 아기들이 세상 모든 것들을 신기해하는 것과도 비슷하다. (=아기가 된듯한 느낌으로 읽을 수 있다.. ?) 

하지만 단지 새롭다고 해서 재미로 치환되는 것은 아니다. <관계의 물리학>이 우리에게 친숙한 인문학 책처럼 거부감 없이 읽히는 이유는 순전히 흥미로운 주제를 선정해 쉬운 글로 재미있게 풀어내는 저자의 능력에서 기인한다. 

그러니 안심해도 좋다. 흥미로운 소재, 편안한 문장과 유머로 쓰여있으니 전혀 쫄지 않아도 괜찮다.



"지금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새로운 발견이 왜 흥미로운지, 그리고 이 발견이 우리 모두에게 어떤 의미를 갖는지를 더 많은 사람들에게 설명해주고 싶어 좀이 쑤시는 사람들이다."
P80







즐기는 사람은 감동적이다.


저자도 책에서 언급했듯이 어떻게 이런 것들이 물리학이 될 수 있는가 하는 의문을 가질 수도 있다. 나 역시 읽는 내내 순수 과학 분야라기보다는 경제학, 통계학, 사회과학, 인문학 등을 섞어놓은 듯한 느낌을 많이 받았다. 하지만 세상 모든 현상들이 작용과 반작용의 역학관계의 결과라는 것을 이해하고 나면 그로부터 무궁무진한 패턴들을 읽어 낼 수 있다는 것이 무척 매력적이고 또 과학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더 나아가 책에서 언급하고 있는 다양한 개념들을 프레임 삼아 우리의 삶을 연구하면 실질적인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점도 재미있다.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이자 단점이 될 수 있는 부분을 꼽으라면 작가 주관이 감정적으로 드러난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정치적 성향 같은 것들이 읽히기도 하는데, 문학에서는 적극적으로 드러나는 요소 중 하나이지만, 객관이 중요한 과학에서는 흔한 경우는 아니다. 책을 더 친숙하게 접하게 하는 윤활제 역할을 함과 동시에 누군가는 불편해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티끌이라는 것도 놀라운데, 그 티끌이 광대한 우주 안에서 자신이 어떤 티끌이라는 것을 오직 지성의 힘만으로 알아낼 수 있다는 것은, 어린 마음에 엄청난 경이로움 그 자체였다. "
P321 



그런 우려되는 부작용에도 불구, 개인적으로는 저자가 자신의 연구분야에 대해 갖고 있는 애정과 열정이 느껴져서 읽고 있는 나도 마음이 뛰는 느낌이라 기분이 좋았다. 고등학교에 진학하면서 더 현실적인 진로를 고민해야 한다는 압박에 장래희망을 과학자에서 건축가로 바꾸던 때의 기억이 난다. 여전히 과학자를 적어 내던 때의 마음을 평생에 걸쳐 가져갈 수 있다는 것은 정말 멋진 일이고 부럽다는 생각을 했다. 

즐기는 사람이 무조건 잘한다는 것은 여전히 의심이 되지만, 즐기는 사람이 감동적이라는 것은 이 책을 읽는 내내 느낄 수 있었다.  




"뉴턴의 운동방정식을 통해 가속도를 구하면(a=F/m), 그로부터 물체의 미래 속도를 알 수 있다. 딱 한 시점의 속도가 아니라, 1초 뒤, 2초 뒤, 그리고 한참 후의 미래의 속도도 모두 알 수 있다. "
P289 

-만약 뉴턴을 이렇게 배웠더라면 훨씬 행복하지 않았을까?



"지금 창밖에 보이는 눈부신 햇빛이 어떻게 어디서 만들어져서 어떤 과정을 통해 내 눈에 들어오는지 아는 사람은, 또 따사로운 햇볕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더 잘 알 수 있다. (…) 어디선가 누군가는 100년 뒤, 아니 1000년 뒤에도 여전히 의미 있을 질문을 지금 시작해야 한다." 
P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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