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세지를 위해 희생되는 것들 <캡틴 마블, 2019> by InDee



드디어 말 많았던 그 작품의 뚜껑이 열렸다. 어벤저스 엔드게임에서 가장 중요한 열쇠이자, 마블 역사상 가장 강력한 히어로라는 화려한 수식어가 붙어있는 만큼 많은 이들의 기대감을 증폭시켰다. 반면에 주연 배우와 제작진의 페미니즘 논란으로 개봉 전 부터 시끄러웠는데, 그 논란에 대한 결론부터 말하면 이 영화는 '페미니즘 영화가 맞다.'

(이후의 내용에는 다소의 스포가 포함되어 있다.)

-페미니즘 영화라서 문제다?
 페미니즘 영화가 맞다고 선언을 하는 순간 많은 사람(아마도 남성)들이 안도하고 전의에 불을 태우는것 같다. 소위 말하는 까방권이라도 획득을 한 듯 '페미 영화는 거른다.'는 식의 원색적인 비난이 빗발치는 것은 무척 애석한 일이다. 이런 류의 비난들은 일말의 희망도 없이 본질을 흐릴 뿐이다. 이에 대한 반작용으로 페미니즘 영화가 아닌, 단지 주요 캐릭터들이 남성에서 여성으로 치환 된 마블 영화라는 옹호하는 입장들도 보이는데 이 역시 매우 잘못된 인식에서 비롯된다. 

 애초에 페미니즘 영화인 것은 전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으며, 문제삼아서는 더더욱 안된다. 모든 종류의 인권 운동과 마찬가지로 페미니즘 자체는 반드시 계속 이어져야 할 정신이다. 그러니 영화 뿐만 아니라 여러 매체에서 페미니즘(뿐만 아니라 모든 인권 문제가)이 부각된다고 해서 비난하거나, 혹은 페미니즘 영화가 아니라고 부정하는 행태들은 완전히 잘못 되었다고 단언 할 수 있다. 

 하지만 올바르고 당연한 가치임에도 현실에서는 그렇게 명료하지 않은 이유는, 그 가치가 구현되는 방식이 천차만별이기 때문이다. 캡틴 마블의 진짜 문제는 페미니즘 영화여서가 아닌, 그 메세지를 전달하는 방식에 있다.


-마블, 그리고 장르에 대한 환상
 모든 마블영화 및 히어로물의 주제는 기본적으로 (강력한)선과 (강력한)악의 대립이다. 여기에서 조금 더 고차원적으로 선이 무엇이고 악이 무엇인지에 대한 고찰까지 나아가는 작품들도 종종 있지만, 대부분은 주인공(선)이 역경을 지나 악당 혹은 문제(악)를 이겨내는 것이 가장 핵심이자 대부분의 사람들이 기대하는 지점이다. 

 앞서 이야기 했듯이, 캡틴 마블에서 가장 기대했던 부분은 기존 마블 시리즈와 어떻게 연결이 될 지, 그리고 새로운 강력한 영웅이 어떻게 탄생하고 어떤 능력으로 어떻게 활약을 하는지가 주된 관심사였다. 언뜻 보면 캡틴 마블 역시 고난 - 극복 - 각성 이라는 고전적인 틀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시대적 배경과 주인공의 성별 등도 단지 그 캐릭터의 특성이기 때문에 (여성으로서의) 고난 - 극복 - 각성이라는 프레임이 추가된다 하더라도 문제될 것은 없다. 거듭 말하지만 블랙 펜서에서 흑인 및 소수 민족의 인권에 대한 이슈가 부각됐듯이 마블 히어로 영화라고 해서 어떤 사상이나 메세지를 담지 말라는 법도 없다. 오히려 현실의 이슈들을 잘 담아낸다면 더욱 작품성에 깊이를 더 할 수 있는 좋은 수단이 된다. 마블 영화에서 페미를 기대하지 않았다는 논리 역시 협소한 본인의 취향을 돋보이게 할 뿐이다. (나의 OO은 이렇지 않아! 라는 식의 숱한 꼰대 마인드와 다르지 않다.) 

 서론이 무척 길었는데, 이 영화의 논란의 핵심은 페미영화여서가 아니라 쉽게 말해 마블과 장르에 대한 사람들의 환상을 제대로 충족시켜주고 있지 못하고 있다는 데에 있다. 단순히 충족시켜주지 못하는 정도를 넘어서 철저한 파괴에 가깝다.





-문제1. 캡틴 마블이라는 캐릭터 
망치와 번개, 명사수, 두 얼굴의 괴물, 특수 방패, 개미, 거미, 마법사, 첨단 갑옷, 인공지능 등. 나열하자면 끝도 없지만 이 단어들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어벤저스를 봤다면 너무나 쉽게 파악 할 수 있다. 히어로물에서 절대 제거 할 수 없는 한 가지를 꼽으라면 주인공의 능력과 그에 따른 개성이다. 고전적인 히어로의 모습을 탈피해서 나약한 히어로, 능력없는 히어로, 고뇌하는 히어로, 심지어 개그하는 히어로 등 여러가지 모습의 영웅들이 등장하고 있긴 하지만, 그들 역시 그 나름대로를 정의 할 수 있는 특징들을 갖고 있다. 

그에 반해 캡틴 마블은 어떤가. 그냥 '졸라 세다.' 정말 그냥 강력하기만 할 뿐 어떻게 강력한지에 대한 설명을 도저히 할 길이 없다. 극중에서 이 능력에 대해 표현하는 부분이 두 번 나오는데, 한 번은 캡틴 마블 본인이 '걔들은 이런거 못해.' 그리고 마지막에 가서 주드로가 '불쇼는 그만 하고..'라는 표현이 전부다. 능력의 특징을 제대로 정의하지 못하겠다면, 하다못해 특징적인 액션이라도 보이는 성의정도는 있었어야 했다.

여성 인권 신장을 위해 싸우는 페미니스트 히어로라면 모르겠다. 엄연히 본인의 포지션이 있고, 또 중요한 역할을 해야하는 상황에서 가장 중요한 개성은 온데간데 없이 여성으로서의 고난만 강조하는 모습에 차라리 드래곤볼을 다시 보고 싶은 심정이었다. 도저히 여성이자 히어로일수는 없었던걸까?
하지만 이것은 뒤의 다른 문제에 비하면 이해해줄만한 수준이다.



-문제2. 누가 누가 더 찌질한가 
무언가가 대립하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힘의 관계가 어느정도 균형을 이루고 있어야만 한다. 이 팽팽한 균형에서 오는 긴장감이 최고조가 됐을때가 히어로물 뿐만 아니라 모든 영화의 꽃이라 할 수 있을텐데, 캡틴 마블에서는 중반 이후로 그 어떤 긴장감도 느껴지지 않는다. 그 이유는 강력한 영웅 이상으로 대립에 있어서 가장 필수 조건이라 할 수 있는 적들이, 상대적으로 너무나 약할 뿐만 아니라 한 술 더떠서 찌질함의 끝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나는 나를 증명할 필요가 없어.'라는 대사를 위해, 지난날의 스승이자 핵심적인 대립관계였던 욘(주드로)은 가장 결정적인 순간에 가서 강한 여성에게 밀려난 찌질한 남성의 발악을 온몸으로 보여주며 처참하게 무너졌고, 크리족 4인방과의 전투씬에서는 뒤로 갈수록 가오갤스러운 '가뿐한'전투로 변모하며, 마치 놀고있는 듯한 캡틴 마블 사이에서 이리 저리 내던져진다.
가오갤에서 압도적인 카리스마를 뿜었던 로난이 영화 후반에 가서 본격적으로  등장하는줄 알았지만, 정작 캡틴 마블과 대치하게 된 상황에서 '여자라는 무기를 되찾으러 오겠다.'는 대사를 치고는 제 역할을 다했다는듯이 멍청한 표정을 지으며 꼬리말고 도망간다.

악당중에 유일하게 그나마 악당다운 품위를 유지한 캐릭터는 역시 여성 캐릭터인 미네르바 뿐이다. 앞서 욘과 로난이 각각 멍청한 남성의 대표적인 대사를 한 번씩 읊는데 소진됐다면, 미네르바는 백인, 흑인, 동양인 여성을 모두 등장시키는데에 일조한다.
미네르바는 그렇다 치고, 허수아비같은 악당들을 쓰러트리는 영웅의 모습은 더 멋있기는 커녕 바람빠진 풍선 날아가는 모습 보듯 허무하기 그지 없다.



-문제3. 우리 퓨리가 달라졌어요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조역일 뿐만 아니라 마블 유니버스에서 가장 중요한 캐릭터 중 하나인 퓨리는 지금까지와의 시리즈에서는 볼 수 없었던 면모들을 뽐낸다. 근엄함이 사라진 자리에 유쾌하고 귀여운 모습들이 여러번 연출되면서 영화의 분위기를 살리는데에 큰 역할을 했다. 캡틴 마블에 한정지어 본다면 이 역할은 전혀 문제될 것이 없는 매력적인 캐릭터다.

하지만 이것이 거대한 세계관을 공유하는 하나의 시리즈물이라는 점에서 이것은 실망감을 넘어 배신감까지 들게 한다. 아이언맨 이후로 10년이 넘는 시간동안 마블의 상징적인 캐릭터로 자리잡은 닉 퓨리가 알고보니 얼빠진 형사였다는 점은 백번 양보해서 그럴 수 있다 치자. 하지만 그의 트레이드마크인 애꾸눈이 단지 고양이에 긁혔기 때문이라는 설정은 모독에 가깝다.

캡틴 마블에 등장하는 모든 남성상에 대한 가이드라도 있었던건지, 로난의 카리스마는 차치하고, 무능하고 얼빠진 개그캐릭터로 소진된 닉 퓨리는 이 영화의 가장 큰 희생양이다. 이것은 단순히 하나의 캐릭터에 국한된 문제가 아닌, 하나의 세계관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처사라고 밖에 생각되지 않는다.



이 외에도 '그냥' 문제가 해결된다든지, 어떤 감정도 느끼기 힘든 주인공이라든지, 허술한 부분들이 많이 보이지만 너무나도 사소하게 보일 지경이다. 애초에 배우가 고인을 모독했다거나 하는 것에는 관심도 없었고, 페미니즘 영화라서 욕먹는 것도 말도 안되는 일이다. 하지만, 어떤 메세지를 전달하기 위해 마블 영화가 갖는 장점들이 싹 무너지는 요소들 때문에 영화를 질적으로 떨어트리는 결과를 낳았다. 메세지를 전달하고 강화하는 것은 필요하지만 그것이 기존에 있는 세계관과 캐릭터와 배경이 같이 잘 녹아들어가야 한다. 캐릭터와 동떨어진 메세지만 고민하다보니 마블의 <캡틴 마블>만이 할 수 있는 이야기의 당위성이 다 소실된 모양새다.

소위 한국에서는 조폭, 경찰, 정치인이 등장하면 영화가 잘된다는 뻔한 공식과 마찬가지로, 단지 페미니즘의 메세지를 가장 잘 담을 수 있는 클리셰들을 부각시키는데에 모든 것을 소진해 버리는 것을 보며, 오히려 최고의 기회가 될 수 있었던 것을 날려버렸다는 느낌에 뒷맛이 무척 쓰다. 잘 만든 페미니즘 영화들이 쏟아져나오는 시대에 하필이면 말이다.






덧글

  • 이글루스 알리미 2019/03/18 08:05 # 답글

    안녕하세요, 이글루스입니다.

    회원님의 소중한 포스팅이 03월 18일 줌(http://zum.com) 메인의 [허브줌 컬처] 영역에 게재되었습니다.

    줌 메인 게재를 축하드리며, 게재된 회원님의 포스팅을 확인해 보세요.

    그럼 오늘도 행복한 하루 보내시길 바랍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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