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여기, 눈앞에 있는 세계 <글자 풍경 _ 유지원> by InDee

_책을 끝까지 읽고 나면 표지의 작은 그림들이 다르게 '읽힌다.'


여행의 목적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가장 중요한 목적을 질문의 형태로 던지면 '무엇을 볼 것인가?'가 되지 않을까. 감각이 깨어있거나 사전 정보가 풍부할 때에 잘 볼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여행을 앞둔 우리가 가장 적극적으로 준비할 수 있는 것은 좋은 가이드가 되어줄 정보들을 찾아보는 일일 것이다. 

 돌아보면 나의 고민은 항상 전자에 방점을 찍고 있었던 것 같다. 누구나 찾아보면 알 수 있는 정보를 모으기보다는 나만의 감각을 깨우는 일이 더 귀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감각을 깨우고 보는 눈을 키우는 일은 그야말로 시작부터 깜깜했다. 무작정 이것저것 많이 보며 체득하기에는 시간과 자원이 너무나 한정적이었다. 답답한 마음에 수업도 들어보고 책도 뒤적이며 결국 알게 된 한 가지는 내게는 좋은 가이드가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마침내 발견하게 된 것이'유지원의<글자 풍경>'이다. 이것은'글자 여행'에 대한 이야기다. 


_내용의 깊이를 유지하면서도, 여행기처럼 친숙한 온도를 갖고 있다. 


글자는 기본적으로'읽는' 것이다. 엄연히'본다'와는 구분되는 개념이다. 그렇기에 떼어놓고 보면 평범한 두 단어, 글자와 풍경이 만났을 때의 조합은 묘한 이질감이 느껴진다. 단어끼리의 부딪힘을 가장 잘 활용하는 것이 시의 영역인데, <글자 풍경>은 제목만큼이나 내용도 시적인 책이다. 지금까지의 타이포그래피 관련 책들은 정보 전달을 목적으로 하는 백과 사전식 나열이 대부분이라서 단순히 각각의 정보를 얻는 데에는 효과적일 수는 있어도, 타이포그래피라는 개념 자체가 희박한 사람들에게 좋은 가이드로서는 한참 부족했다. 여행의 즐거움을 모르는 사람에게 여행지의 자세한 설명을 늘어놓는 격이다. 반면, 단행본 사이즈의<글자 풍경>이담고 있는 정보의 양으로만 보자면 그리 많은 분량은 아니지만, 짧은 싯구가 장편소설 하나 보다 더 강한 인상을 남기듯 그 이상의 영감을 주는 문장들로 가득했다. 


_디지털 시대 이전의 글자들은 그 형태에서 기술력이 드러난다.


<글자 풍경>이 주는 영감은 단순히 문장이 예쁘거나 감상적인 내용이라서가 아니다. 여행기를 읽듯 편하게 읽다가도, 곳곳에 글자를 둘러싼 과학과 역사에 대한 저자의 집요한 탐구가 녹아있기 때문이다. 연재칼럼을 묶어놓았기 때문에 개별 이야기들의 완결성도 있을뿐더러 이것들을 짜임새 있게 배치하여 책 전체적인 흐름도 끊김 없이 자연스럽다. 일관되게 에세이의 온도를 유지하고 있기 때문에 쉽게 빠져들 수 있으면서도, 충실히 기본 개념에서부터 과학적, 역사적인 이론적인 부분까지도 짚고 넘어간다. 그리고 점차 고도를 높여가며 마지막에 가서는 글자라는 것의 본질적인 영역까지 함께 고민할 수 있도록 이끈다. 서양의 서체부터 시작해서 한글은 물론이거니와 서예와 악보까지 다루고 있는 범위가 무척 넓어서, 그야말로 풍경 보듯 글자를 조망한다. 타이포그래피라고 하면 서체에 갇혀있던 일반적인 개념 하고는 사뭇 다르다.  저자의 글자에 대한 애정이 가득 느껴져서, 글자가 마치 살아있는 생명체처럼 다가오는 것도 독특한 체험이었다. 

 결과적으로 이 책을 다 읽고 나서는 정말 좋은 패키지여행을 다녀온듯한 느낌이 들었다. 한 번의 좋은 여행은 다음 여행을 준비하는 원동력이 되듯이, 이 책을 통해 궁금증의 해소했다기보다는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것들에 대한 새로운 호기심을 자극받는다. 


_저자는 결과물을 놓고 설명하는 방식을 취하지 않는다. 마치 글자의 성장기를 보는듯 하다.

 

글을 읽고 쓸 줄 알게 된 이후로 너무 당연하게 일상 속에서 사용하고 있었기 때문인지, 글자 자체를 어떤 대상으로 바라보는 것은 정말 쉽지 않은 일이다. 지금까지 시도해봤던 기계적인 공부들에는 명백한 한계가 있었다. 아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공감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공감이 바탕이 되지 않은 앎은 그 가치가 현저히 떨어진다. 개인적으로 갈증을 느끼던 부분을 정확히 짚어주고 있어서<글자 풍경>이 유독 반갑다. 

 글자의 세상 속에서 좀 더 공감하고 나아가 더 잘 알게끔 인도해주는 책. 글자를 알고자 하는 사람에게는 좋은 가이드가, 이미 글자와 친숙한 전문가들에게는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좋은 벗처럼 느껴질 것이다.


_글자는 의미가 읽히는, 손으로 쓰여진 어떤 형상이다. 필체 역시 저마다 갖고 있는 형상이다.



*본 리뷰는 을유문화사에서 도서를 제공 받아 작성 되었으며, 읽고 느낀 점들을 솔직하게 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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