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입니다 , 2017 by InDee



 왜 하필 또 다큐멘터리일까 생각했다. 그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그를 기억하는 이들에게 울림을 줄 것은 확실하지만, 그런 울림은 또 다른 이들에겐 알레르기 같은 염증을 유발할 것임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나는 그와 같은 대통령이 있었음을 기억하면서도 한편으론 맹목적인 감성에는 묘하게 거부반응을 갖고 있는 애매한 위치에 있는 사람이다.


열여섯 살 아직 자각이 없던 내겐, 2002년이 노란색 환희보다는 붉은색 함성으로 기억되고 있었고, 내 안의 세상이 중요하던 스물셋 2009년에도 여전히 큰 슬픔이 왜 슬픔이 되는지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왜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환희했었고 또 눈물을 흘리는지, 그 시작과 끝에 온전히 합류되지 못한 나는 지금까지도 쭉 외부자로 밀려나 있었다.


그들을 더 철저하게 소외시키는 것이 외부자들이 소외감을 극복하는 가장 쉬운 방법이라는 것을 그래서 어느 정도는 이해하고 있었다. 그래서 아직 애도를 시작하지 못하고 있는 나 같은 사람들을 위해, 더 냉정하게 무색무취의 영화를 만들어주길 바랐었다. 그렇지 않으면 외부자들은 자신 안으로 들이려고 하지 않을 테니 말이다.


그의 얼굴과 음성으로 가득 찬 2시간 동안 많은 사람들이 눈물을 흘렸다. 어떤 울음을 목구멍에 반쯤 걸친 채로 장면 장면들을 보면서, 처음 했었던 질문의 답을 찾을 수 있었다. 때로는 현실이 더 드라마 같을 때도 있다는 말을 확인하면서, 굳이 이야기를 새로 만들어 낼 필요 없이 지나간 그 장면들 만으로도 충분했던 것이다. 이성적으로 '잘' 하는 것과 더불어 사람들에게는 자신의 감정을 쏟을 드라마가 필요하다.


그의 치적이 어땠는지 판단할 수 있는 정보가 내게는 없지만, 설령 정치인으로서의 그가 부족했다 하더라도 여전히 그의 드라마가 갖는 힘은 부정당하거나 가치 절하 당해서는 안되는 것이다. 오히려 반복되고 보편적인 상식이며 가치로서 인정을 받아야 할 것이다.

 어느 시사 프로그램에서, 15년 전의 대통령이 커피를 직접 들고 있는 모습은 품위 없는 비난의 대상이었지만, 지금의 대통령에게는 환호의 대상이 된다는 현상에 대해 언급했다. 비상식적인 10년을 소비한 후에야 사람들은 깨닫고 있는 것이다.


큰 변화를 이어가고 있는 지금, 변화는 어떻게 시작이 됐었는지, 어떤 것들을 기억해야 하는지 일깨워주는 역할로서 아주 시의 적절한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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